군함도.
이 이름은 어딘지 강철로 둘러싸인 전함을 연상시킵니다. 실제로도 이 섬의 모습은 거대한 군함을 닮았기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그러나 이 작고 고립된 섬은,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참혹한 과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시마(端島)’라는 본래의 이름을 가진 이곳은, 일본 나가사키 현에서 약 19km 떨어진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으로, 메이지 시대부터 탄광 개발이 시작되어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한국인과 중국인 강제 노동의 중심지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제 그 진실의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군함도는 단순한 폐광 섬이 아닙니다. 그곳은, 우리 역사의 고통이 살아 숨 쉬는 산증인입니다.
1. 강철의 섬, 군함도 – 인공 건축의 위엄인가? 절망의 감옥인가?
19세기 후반, 일본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석탄이라는 자원을 찾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를 메워 군함도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몇 개의 작은 주거지가 들어선 정도였지만, 석탄의 가치가 폭등하면서 이 섬은 점점 확장되어 결국 가로 480m, 세로 160m의 인공섬이 탄생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곳이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계 최초의 고층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가 존재한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1916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군함도에 사는 광부와 그 가족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죠.
하지만 겉보기와는 다르게, 그 안에서 펼쳐진 삶은 고된 노동과 건강을 해치는 먼지, 비좁은 공간 속의 삶이었습니다.
2. 한국인 징병과 군함도의 어두운 그림자
1940년대 초반.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 돌입하면서 극심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합니다. 이에 따라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징병과 징용이 본격화되었고, 많은 이들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본 각지의 군수공장과 탄광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군함도는 그러한 강제 노동의 대표적 현장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조선인은 일일 최소 12시간 이상을 일했으며, 위험한 탄광 속에서의 사고, 열악한 식사, 일본인 노동자와의 차별적 대우는 사망률을 극단적으로 높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강제 동원된 조선인 중 수백 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그 시신조차 온전히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출근하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고 말하며, 이 섬을 “떠날 수 없는 감옥”이라 불렀습니다.
3. 산업의 중심, 그러나 인간의 희생 위에 세워진 영광
군함도의 석탄은 일본 제국의 산업화를 떠받치는 기둥이었습니다. 특히 군함도에서 채굴된 석탄은 야마사키 미쓰비시 계열의 주요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되며, 군함, 병기, 철도, 발전소 등 다양한 분야에 공급되었습니다.
한때 이 작은 섬에는 5,000명 이상이 살았고, 인구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1제곱킬로미터당 약 83,500명)에 달했습니다.
군함도에는 학교, 병원, 영화관까지 있었으며, ‘현대 도시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도 받았죠.
하지만 그 번영의 그림자는, 조선인의 눈물과 피로 얼룩진 현실을 가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4. 군함도가 속한 일본의 행정구역: 나가사키현(長崎県)
군함도(端島, 하시마)는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県)에 속해 있습니다.
나가사키현은 일본 규슈(九州) 지방 서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태평양과 맞닿은 나가사키만을 품고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
🧭 나가사키현의 특징
- 바다와 섬이 많은 지형으로, 전체 면적 중 섬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 역사적으로도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도시로, 에도 시대의 유일한 개항지(데지마)였죠.
- 1945년 8월 9일, 히로시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나가사키는 항상 세계와 연결된 일본의 관문이자, 전쟁의 상처를 안은 도시로 기억됩니다.
군함도가 바로 이곳,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에서 약 19km 남쪽 해상에 위치하고 있죠.
5. 군함도와 가까운 주요 도시: 나가사키시(長崎市)
나가사키시는 나가사키현의 중심 도시이자 군함도의 관리 행정 주체입니다.
나가사키시의 역할과 의미
- 군함도 탄광의 모든 행정은 나가사키시를 통해 운영되었습니다.
- 한국인 징용 피해자 명단도 대부분 이곳 시청과 시민단체를 통해 보존·관리되고 있습니다.
- 군함도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면서 나가사키항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이 주요 교통수단입니다.
즉, 군함도의 모든 산업, 행정, 관광, 기억은 나가사키시를 통해 확장되고 재구성되는 셈입니다.
6. 산업 도시로서의 과거 – 사세보시(佐世保市)와 군함의 흔적

군함도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나가사키현 북쪽의 사세보시(佐世保市) 역시 흥미로운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세보시는 일본 제국 해군의 주요 군항으로, 군함 제작과 군수 산업이 번성했던 도시입니다.
군함도의 이름이 ‘군함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 있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사세보나 요코스카에서 건조된 군함들과의 연관성도 언급합니다.
군함도를 바라보는 ‘군사적 상징성’이 이 도시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거죠.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도시와 미 해군의 거점 도시로 유명합니다.
7. 오늘날의 변화 – 관광지와 평화교육의 중심

나가사키시
- 원자폭탄 박물관, 평화공원,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등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한 관광지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 군함도 역시 단순한 폐허 관광지를 넘어,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는 공간으로 홍보되고 있습니다.
이키시(壱岐市), 고토시(五島市)
- 나가사키현 내의 주요 섬 도시들로, 군함도와 마찬가지로 바다와 접한 섬 문화와 어업 중심의 생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 최근에는 군함도와 연결한 ‘일제 강점기 역사 코스’, ‘섬 테마 관광’ 등이 연계되어 지역 관광 산업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8. 왜 나가사키현이었을까?
군함도처럼 ‘강제징용’이 이루어진 탄광 지역은 일본 전역에 분포해 있었지만, 나가사키현은 지리적, 전략적, 산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 항구 도시로서 자원의 운반과 해상 교통이 유리했습니다.
- 일본 본토에서 가깝지만, 상대적으로 외부 시선에서 고립된 위치여서 노동 착취가 은폐되기 쉬웠습니다.
- 근대화와 군국주의 시기의 중심 산업지역이었습니다.
이 모든 요소가 모여, 나가사키와 그 부속 섬인 군함도는 일본 제국주의 산업화의 대표적인 실험장이 되었던 것이죠.
9.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
군함도는 단지 한 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섬을 둘러싼 나가사키현의 산업 전략, 국가 차원의 전쟁 수행 방식, 그리고 지방 도시들이 겪은 역사적 굴곡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섬 하나’의 관광지를 넘어서, 그 공간을 둘러싼 지역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10.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군함도는 단지 한 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물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개발과 번영의 그늘 아래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되묻게 하는 상징이죠.
우리는 그 기억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관광지로서 즐길 수는 있어도, 고통의 역사는 지워져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