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이 몸은 고양이로소이다> 파고들기: 고양이 눈에 비친 ‘웃픈’ 우리 모습

나쓰메 소세키의 ‘이 몸은 고양이로소이다’는 단순한 동물 이야기를 넘어, 한 시대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인간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 일본 근대문학의 걸작입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 화자의 독특한 관점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재미와 함께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하며, 출간 후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필독 고전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몸은 고양이로소이다’ 주요 내용 및 화자의 특징

  • 고양이 화자: 주인공은 이름 없는 수고양이로, 주인인 영어 교사 구샤미 선생의 집에 살면서 주변 인물과 사건들을 관찰합니다.

  • 관찰 대상: 구샤미 선생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메이테이, 간게쓰 등)과 같은 메이지 시대 지식인들의 일상, 대화, 사상을 주된 관찰 소재로 삼습니다.

  • 인간 군상 묘사: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들은 허영심 많고, 위선적이며, 종종 어리석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입니다. 화자는 이러한 모습을 냉소적이면서도 때로는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이 몸은 고양이로소이다’를 읽는다는 것은, 마치 시간의 결을 거슬러 메이지 시대 어느 평범한 지식인의 집 마루 밑을 기웃거리는 듯한 묘한 체험을 선사합니다. 그곳에는 이름조차 없는 한 마리 고양이가 살고 있죠. 갓 태어나 세상의 냉혹함 속에 버려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영어 교사 구샤미 선생의 집에 얹혀살게 된 녀석입니다. 이 고양이의 눈을 통해 우리는 인간 세상의 한바탕 소동을 엿보게 되는데, 그 시선이 어찌나 냉철하고 또 때로는 천진한지 웃음을 참기 어렵습니다.

주인인 구샤미 선생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인물입니다. 신경쇠약과 위장병을 달고 살며, 세상사에 무능하고 게으르기 짝이 없죠. 그러면서도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은 있어서, 그림을 그려보겠다, 하이쿠를 지어보겠다, 활쏘기를 해보겠다며 온갖 시도를 하지만 제대로 결실을 맺는 법이 없습니다. 고양이는 그런 주인을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그의 서재에서 풍겨 나오는 책 냄새와 그가 내뱉는 푸념 섞인 한숨 속에서 기묘한 안정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어쩌면 연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의 부인과 아이들은 고양이에게 그리 살가운 존재는 아니지만, 그들 역시 이 소극의 무대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는 평범한 군상일 뿐입니다.

구샤미 선생의 집은 그의 친구들에게는 사랑방과도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존재는 미학자라는 메이테이죠. 그는 마치 세상 모든 이치를 다 깨달은 사람처럼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좌중을 휘어잡지만, 실상은 허풍과 궤변으로 가득 찬 인물입니다. 구샤미 선생을 놀리고 골탕 먹이는 것이 그의 큰 낙인 듯 보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고양이마저도 인간의 지적 유희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단골손님은 구샤미 선생의 옛 제자인 간게쓰입니다. 이학을 전공한 그는 ‘목매다는 역학적 연구’라는 해괴한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죠. 그는 진지하고 성실해 보이지만, 어딘가 세상 물정에 어둡고 어수룩한 구석이 있습니다. 특히 이웃집 졸부 가네다 씨의 딸 도미코와의 혼담은 그의 우유부단함과 주변인들의 오지랖이 한데 섞여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곤 합니다. 고양이는 창문 너머로, 혹은 담벼락 위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인간의 연애사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나름의 고찰을 펼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바로 구샤미 선생의 앙숙이라 할 수 있는 가네다 일가입니다. 돈으로 신분 상승을 이룬 전형적인 졸부인 가네다 씨와 그의 부인(특히 그녀의 커다란 코는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은 자신들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며 구샤미 선생을 은근히 깔보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야구공이 자기 집 마당으로 넘어왔다며 소란을 피우거나, 간게쓰의 뒷조사를 하는 등 그들의 속물적인 행태는 고양이의 눈에도 뚜렷이 포착됩니다. 고양이는 이들을 통해 인간 사회의 계급과 허영이라는 또 다른 단면을 목격합니다.

고양이는 단순히 관찰만 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때로는 주인의 무릎에 앉아 잠이 들기도 하고, 맛있는 생선 한 조각을 얻어먹기 위해 애교를 부리기도 합니다. 동네 다른 고양이들과 영역 다툼을 벌이거나, 쥐를 쫓는 본능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녀석의 사색은 멈추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왜 저리도 복잡하게 살아갈까, 왜 의미 없는 일에 목숨을 걸까,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녀석의 독백은 때로는 철학적이기까지 합니다.

이야기는 고양이가 우연히 맥주를 마시고 취해 비틀거리다 물독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물속에서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며 고양이는 기묘한 평온과 감사를 느낍니다. “고맙다, 고맙다. 이 고마움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이 마지막 독백은 삶의 고통과 번뇌로부터의 해방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동시에 한 존재의 소멸이 주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결국 이 이름 없는 고양이는 짧은 생을 통해 인간 세상을 관조하고, 그 속에서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뒤 조용히 퇴장한 셈입니다.

‘이 몸은 고양이로소이다’를 덮고 나면, 한동안 그 고양이의 무심한 듯 날카로운 눈빛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들이고, 저 높은 곳 어딘가에서 혹은 우리 발치 어딘가에서 한 마리 고양이가 우리의 희비극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에 잠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깊은 울림을 지닌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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